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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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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2 전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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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4-11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는 책에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만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정약전은 신유박해 때 16년 동안이나 흑산도에 유배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흑산도 근해의 생물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해 ‘자산어보’ 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그 내용이 얼마나 세밀하고 정확한지 오늘날에도 귀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16년의 고독하고 암울한 시간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것이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찬은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희망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찬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똑같이 고난과 환란을 겪어야 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환란이나 고난을 당할 때 우리 곁에 찾아오셔서 그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힘든 때일수록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바울의 서신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소망을 갖고 신앙을 지키라는 말씀을 본인의 경험을 통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소망을 품고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1. 소망의 하나님이 위로하신다.

위로라는 말은 남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 주려고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베푼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3절에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자비는 불쌍히 여긴다, 동정, 긍휼의 뜻이 있습니다. 내적인 뜻이 강합니다.

위로는 이 내적 행위가 외적으로 표현되고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보혜사 즉 위로자로 불렀습니다.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라고 하였습니다.

6절에서도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위로하사'라는 말은 현재 분사형으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중단 없이 계속됨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사람에게

나타납니까?

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래서 선언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위로자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사람의 위로는 잠시뿐이지만 성령님의 위로는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그 위로자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1. 인내를 밑거름으로 소망이 이뤄진다.

전1:3절에서 바울은 소망을 인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기다림입니다. 가치 있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이 왜 가치 있나요?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치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 1년간 고이 모시고 만들지요 태어나면 맨 날 울며 보채기만 하지 걷기를 합니까?

무슨 보탬이 되나요? 인내하며 아이를 키워야 됩니다. 언제까지 키워요. 한국은 거의 대학 졸업 때 까지 키워요, 사람 만들기 위해 거의 20년은 걸려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가치가 있고 사람이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소망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인간을 위해 찔림과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았습니다. 인내함으로 승리했습니다.

8절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어떤 환난과 어려움을 당했기에 살 소망이 없다 라고 했을까요? 9절에 사형선고 받은 줄 알았다.

바울답지 않은 표현들을 사실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이 어려운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아마도 성도 여러분 중에 바울과 같은 현실에 갇힌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살 소망이 없는 상태.... 그런데 바울은 7절에서 ‘소망이 견고하다’ 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에서 소망이란 단어는 ‘엘피스’ 인데 ‘바라다’ ‘희망하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엘피스의 뜻은 ‘기대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입니다.

바울이 ‘이 소망이 견고하다’ 라고 언급함으로 고린도교회에 대한 그의 신뢰가 매우 강함을 보여줍니다.

 

  1. 소망을 선택하라

망을 선택할 것인가? 희망을 선택 할 것인가? 소망은 선택입니다.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2011년에 출판된 책 [행복은 전염된다] 니콜라스 크리스태키스와 제임스 파울러가 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행복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전염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절망도 전염됩니다. 우울의 감정도 전염됩니다.

과일을 보세요. 귤 박스에 수십 개의 과일이 있습니다. 한두 개 썩었는데 방치하면 몇 일만에 다 썩어버립니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과 함께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반대로 기쁨도 전염됩니다. 그래서 활발한 사람과 함께 하면 에너지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함께 있으면 믿음이 자라나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좋은 일 들이 타인에게 생기게 하시를 바랍니다. 모든 시편의 공통점이 하나님을 선택 한 것입니다.

신앙인의 바른 선택과 결단을 하겠다. 내가 지금 문제가운데, 고난 중에 있어도 하나님을 선택하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다 라고 고백합니다.

  1. 소망을 갖도록 서로 도우라

1절에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인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의 고난 가운데 그 고난의 원인을 제공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는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용납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반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어. 너희가 잘되나 보자,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원망의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실의에 빠져있고 삶에 지친 지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합시다.

이도 힘들다면 말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조용히 그 지체들을 생각하며 기도해 주기 바랍니다.

만나면 그냥 손 한번 잡아주기 바랍니다. 친절한 인사 한번 하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힘이 됩니다. 지체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이 세상에 도움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의무와 책임이 따릅니다.

서로 돌봐야 되고 도와야할 책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