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왜 십자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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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전성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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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8-25

현대의 교회는 부유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성장했습니다. 서울은 물론 중소 도시만 가도 밤에 수많은 붉은 십자가가 도시를 밝히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즐비하고 성도들이 급증한 이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역사상 제일 힘이 없고 영향력이 적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의 이유는 십자가의 의미가 퇴색된데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 십자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걸이 장식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차에 십자가를 달고 다닙니다. 교회마다 십자가를 높이 달고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수치요 부끄러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로마시대 그 치욕의 십자가를 왜 져야 했는가?

십자가는 로마시대 최고의 죄인이 져야 만 되는 형벌과 형틀이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가 십자가 죽음에 해당하는 죄이기에 주님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죄는 수치를 가져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방송에 보면 검찰에 나올 때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입니다. 본능적으로 숨지요... 아담이 숨었습니다.

죄는 사람을 부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욕과 수치를 대신 당해 주셨습니다.

결국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죄는 인류에게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선포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죽으셔야 했습니다. 죄는 우리를 종국에는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우리 대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1. 나 대신 져야 되는 십자가이다.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이 땅의 사람들이 똑똑한 것 같으나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사람들 중 비교해서 좀 더 의인이 있고 나은 사람들이 있고,

좀 더 뛰어난 인격, 좀 더 높은 지위, 좀 더 많은 재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그 형상을 상실해서 방황하던 영혼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대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광야에서 불 뱀에 물려 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은, 장대에 놋 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인류를 살리기 위함이셨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무엇인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도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주님은 순교의 죽음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힘이 없어 돌아가신 것도 아니시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피 흘리셨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1. 십자가는 능력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복음은 말의 지혜나 철학적 논증에 머무를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러한 성격을 갖는 복음에 대한 평가는 결과는 이중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것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18절, ‘멸망하는’ 으로 번역된 단어 ‘아폴뤼메노이스’ 는

‘멸망시키다’. ‘파괴하다’ 의 뜻을 가진 ‘아폴뤼미’ 의 현재 분사형이며 ‘구원을 얻는’ 으로 번역된 ‘소조메노이스’ 역시 ‘구원하다’ 를 뜻하는 원형 ‘소조’의

현재 분사형이다. 여기서 현재 분사는 지속적임을 보여줌으로 이러한 표현은 파멸의 길과 구원의 길에 서 있는 자들의 상태가 영구적임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8절,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인류에게 가장 큰 능력은 돈보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다. 십자가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우선, 십자가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십자가는 참된 복을 줍니다.

  1.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다.

23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하나님의 편에서 본 십자가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는 최고의 표현이고,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나타낸 것이 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인간의 상태는 연약했고,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심으로

인류를 향한 최고의 사랑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표시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자기의 사랑을 십자가를 통해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의에 대한 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데 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를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죄에 대한 심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독생자에게 대신 담당해서 죽게 함으로써 의로우신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결 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을 환호하며 메시야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왕으로 대접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모든 것들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무지한 사람들,

혹은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입성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할 것이 없는 이 시대에 사실은 십자가가 부족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땅에 십자가는 넘쳐나는데 참된 십자가는 부족합니다.

왜 십자가인지 모르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주님의 참된 십자가를 전달해주는 성도가 됩시다.